365일 당신의 마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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★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★

yulovely 2019. 3. 21. 19:10


★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★

나 늙으면
당신과 살아보고 싶어
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
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

개울물 소리
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
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
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
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들고 산책해야지

삐걱거리는 허리 쭈욱 펴 보이며
내가 당신 "하나 두울~"
체조 시킬 거야

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
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
은빛으로 반짝일 때
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
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

아주 부드러운 죽으로
우리의 아침식사를 준비 할 거야
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놓고
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
깔깔한 입안이 솜사탕 문 듯할 거야
이때 나직이 모차르트를 올려놓아야지

아주 연한 헤이즐넛을 내리고
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
이제 잉크 냄새나는 신문을 볼 거야
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
눈을 감고 다가가야지
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
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
그래보고 싶었거든

해가 높이 떠오르고
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
당신의 무릎을 베고
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
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

어쩌면 그때는 창밖의 많은 것들
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
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

나 늙으면
당신과 살아보고 싶어
당신의 등에 기대 울고 싶어
장작불 같던 가슴
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
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
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때
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

겨울엔
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뜰 거야
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 개 사서
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
눈이 내릴까

봄엔
당신 연베이지 빛 점퍼 입고
나 목에 겨잣빛 실크 스카프 매고
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 갈까
"드라이빙 미스 데이지" 같은

여름엔
앞산 개울가에 당신 발을 담그고
나 우리 어릴 적 소년처럼
물고기 잡고 물장난해보고
그런 날 바라보며 당신은 흐릿한 미소로
우리의 깊어가는 사랑을 확인하려 할 거야

가을엔
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
헤이즐넛 보온병에 담아들고
낙엽 밟으러 가야지
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하나 찍을까
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놓아두어야지

그리고, 그리고
서점으로 가는 거야
책을 한 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
지난날 우리 둘 회상도 할 겸
당신이 읽어주는 한 줄 한 줄에
푹 빠져 잠이 들겠지

당신 책 읽은 모습을 보며
화선지 속에
내 가슴 속에
당신의 모습을 담아
영원히 영원히 간직할 거야
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
 
- 황정순 -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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